그냥 한번 추억해보는 일본 축구 레전드 미우라

in #aaa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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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의 레전드 미우라 가즈요시가 또 다시 현역 연장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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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는 과거 야구의 이치로처럼 한국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도발 같은건 하지 않았지만 일본인이란 이유로 어지간히도 우리에겐 미움을 많이 받던 선수입니다.

미우라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건 92년 일본에서 개최된 아시안컵부터인데요. 어찌보면 축구계에서 겉저리였던 일본이 아시아 최강의 반열에 들면서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의 영예를 지키고 있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 같네요.

당시 86년 아시안게임 우승 멕시코 월드컵 본선 진출과 선전, 90년 이탈리 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무패(단 1실점)통과등으로 인해 한국 축구의 위상은 아시아내에서 만큼은 하늘을 찌를듯했고, 건방도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이로인해 92년 아시안컵 지역 예선에 실업팀/대학팀 선발을 내보내는 여유를 부리다가 월드컵도 아닌 아시안컵 본선에는 가지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사실 그 아시안컵이 열리기 몇개월 전 중국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현재 E-1 챔피언쉽의 전신)에서 일본은 이미 경외의 대상이었던 한국을 꺽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때도 미우라를 비롯한 다카기, 나카야마, 하시라타니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출현합니다. 이 대회의 MVP도 역시 미우라였으니 사실은 아시안컵 이전에 이미 아시아 내에서는 최고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일본이 다이너스티컵, 아시안컵을 재패하면서 승승 장구 하는 사이 한국은 말그대로 침체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김주성, 황선홍, 홍명보등의 선수를 보유하면서 절대 일본에 뒤지지 않는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처럼 세계 축구의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고 기득권을 가진 기존의 감독들과 세력들에 의해 전술적인 발전도 이뤄내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두팀은 다시한번 리벤지 매치를 갖게 되는데, 그경기가 바로 94년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 4차전입니다.

한국은 일본에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갈고 있었지만 단지 이만 갈고 있었을 뿐이었고 결과는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지속하다 미우라에게 통한의 한방을 맞고 다시한번 무너집니다.

아마도 며칠후 도하의 기적(일본명 : 도하의 비극)이 없었다면 한국축구는 훨씬 더 길고 긴 침체기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됐건 이 선수로 인해 그간 아시아 축구계에서 최고팀이라 자부하던 한국도 각성하게 되고 이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이나 남미와도 맞붙어 볼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