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ance Now ] 빽은 소중한 거다.

in #kryesterday

Just Dance Now를 1시간 30분간 미친듯이 달리니 엔도르핀이 솟구치고 기쁨의 에너지가 차오르고 각성 상태가 찾아와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활력이 돋아났습니다. 희망과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Just Dance 만쉐이


image.png
<출처: Playgon>





1. 통제광은 어떻게 자유를 숭상하게 되었나?


나는 경기도 외곽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부터 이 동네가 참 싫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1시간 거리에 서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을만큼 꼰대스러운 동네였다. 얼마나 골때리는 감시 사회였냐하면, 내가 졸업한 A학교 학생이 저녁 6~8시 사이 거리를 배회하면(담배를 피거나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저 거리를 쏘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학교로 신고를 했다. 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도 다 필요 없었다. 거기서 A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승진길이 다 막혀버렸다. 2002 월드컵으로 하나가 된 연대정신으로 길거리를 방방 뛰어다니면서도 외지인이 이사와서 적응할라치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떠나게 만드는 무서운 동네였다. (에버랜드 생기는 걸 결사반대하더니 지하철은 여전히 뚫리지 않았고, 스타벅스도 망해서 나갔다. 다른 곳 다 오르는 집 값마저 시간이 멈춘듯 아직 그 동네만 그대로이다)


한국에서 여자로 우리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게 그저 랜덤이라 생각했지만 운명론자가 된 지금의 나는 이것이 운명이라 생각한다. 나의 친가는 그 지역에서도 아주 낙후된 농촌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내가 태어날 당시까지 아니 여전히 남아선호사상이 짙게 배어 있고 미혼남녀에게 시집 장가 언제가냐를 비롯한 시대착오적인 잔소리, 오지랖을 부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전통 문화를 고수하고 있는 집성촌이다(물론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역경제를 지탱할 수는 없었고 다문화 가정 출신의 비율이 높다 아무리 꼰대동네라도 경제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전투력이 낮은 울보에다가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순종적인 착한 아이였다. 만약 그럭저럭 도시적이고 민주적인 평범한 동네에서 자랐더라면 내 마음 속 원인 모를 반항심이 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 편견이 공유되는 발전 없는 동네인 덕분에 나는 어딘가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어릴 적 ‘왜 여자라서 안되지?’라는 질문이 피어나서 남몰래 이를 갈기도 했고,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멸시하는 동네 어른들을 볼 때는 ‘왜 외국인 노동자를 사람들이 싫어하지?’ 의문이 들었다. 좁은 동네에 갇혀 나 역시 그 동네의 셈법과 논리를 열심히 내면화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의문과 답답함 반항심은 고양이 발톱처럼 숨겨놓았다. 어렸을 적부터 막연한 자유를 꿈꾸었다. 내게 자유란 그 동네를 벗어나서 다시는 그 동네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통제광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타인을 내 식대로 통제하기를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형벌에 더 가깝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타인이 그리고 환경이 나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설령 그것이 착각이라해도 내게는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선택이었다라는 느낌 자체가 중요하고 그 느낌을 누리고 있다는 확신이 자유이다. 억압이 가득한 곳에서 그들의 규칙을 존중하며 따르는 척했지만 언제나 내가 그곳에 동화되지 않는 중간자가 되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비록 나는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절대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내가 자유라는 단서였다. 나는 나 이외에 나를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를 지나치게 거북스러워했다.덕분에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열려있게 되었고 다른 문화와 다른 의견을 비교적 존중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신화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부자와 결혼하면 행복해진다고 내게 말하곤 했다. 그들에게 변화는 위험이고 튀는 건 자살 행위라 여겨졌고 모험은 미친짓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돈이라고 가르쳤다. 고등학교 때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가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사는 데 돈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분명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찾는 데 삶을 허비하기로 했다. 확실한 건 그 동네에 살아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알 수 없고, 그들 중 내가 찾는 것을 숭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그곳을 내 고향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또 그들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했다. 그들과 달리 나는 변화가 삶의 윤활유라고 생각했고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기회가 되는 한 모험하려 애썼으며 무엇보다도 돈을 절대 삶에서 우위에 두지 않게 되었다.



2.빽은 소중한 거였다. 혼자는 너무 외롭다.

나는 언제나 혼자가 되길 자처했는데 내게 집단주의, 패거리 문화란 부정부패의 온상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를 망친 건 끼리끼리 문화였다. 우리 편 네 편 나눠서는 발전이 없다고 느꼈다. 우리 편에게만 기회를 주고,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배제되는 문화가 폭력적이며 불합리하게느껴졌다. 또한 이쪽 편 저쪽 편 가르며 강자와 약자 앞에서 태도가 달라지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박쥐처럼 편을 바꿔가며 말을 바꾸는 처세술을 극도로 혐오했다. 어린 날에 융통성이란 변절에 불과해 보였고 제법 괜찮은 인간이라면 청렴할 만큼 일관성을 증명해야 했다. 결국, 내게 용인되는 집단이란 무척이나 타인에게 개방적이고 확장할 수 있는 집단인 동시에 정체성이 명확하고 일관적이여야 했다.



그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어릴 적 무리에 적용하는 게 그야말로 무리수다. 결국 괜찮은 커뮤니티에 속하기보다는 혼자가 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했다. 우울증을 겪고 나서는 더욱 내향적인 성격이 되었고 어느 순간, 원한다 해도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기 어려웠다. 본의 아니게 외골수 혹은 아웃사이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나를 위로하곤 했다.

아비투스를 읽으며 전형적으로 중산층의 행동양식과 의식을 내재화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은 그들의 부모님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나은 지위를 확보했고, 교육과 학벌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는 사회를 경험했고 그것이 그들이 경험한 유일한 성공 공식이었다. 당연히 자식들의 교육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게 중요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그 사회의 전제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했다. 물론 부모님들은 은연중에 자식이 괜찮은 친구들을 사귀길 바랐을 것이지만, 기껏해야 예의 바르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공부를 잘하길 바랐지, 이미 지위와 부가 확보된 친구의 친분으로부터 운 좋게 자식의 인생에 돛을 달아주기까지 바라는 부모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은 그다지 인맥에 관해서 중요성을 설파하지 않았고, 사회면 기사를 보자면 은연 중에 인맥은 불공정을 상징하는 단어로 특혜를 비난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되었다. (아니면 이 모든 게 나의 개인적인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라도 상을 타거나 회사를 입사했을 때 자신의 능력으로 정당하게 성취했음을 강조하고 자랑스러워하지, 누군가의 도움, 인맥으로 다른 이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즉 자본주의 세상에서 실제 작동하는 원리는 논외로 쳐도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이 ‘선’이라는 데 한국 사회에 합의가 되어있었다.


아비투스를 읽으며 놀랐던 건 최상위층의 미국 부자들은 인맥을 활용하는 데 죄책감이나 죄의식 따위가 없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누가 더 그 자리에 적합할지 누가 더 능력이 있을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옆에 둘 사람이라면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 말이 통하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 이질감이 없는 사람을 원했다.


‘가장 능력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그게 가장 공정하고 공평하다.’라는 건 단지 하나의 가설과 이론 아니 하나의 주관적인 믿음에 불과했다. 공리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지향한다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산출물을 만드는 데 능력주의가 적합하다. 그러나 애초에 목적이 그것이 아니라면? 가령 가장 단단하고 끈끈하고 행복하고 지속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면 능력 따윈 혈액형만큼이나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


과거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읽을 때마다 속이 아렸다. 사회성이 발달하고 관계망이 탄탄할수록 오래살고 행복하다고 했건만 나의 인간관계란 매우 좁디 좁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고 합리화를 하기도 했지만 요새 들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1:1의 관계만으로는 커뮤니티에서 느끼는 연대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취약점이자 트라우마에 가까운 소속감의 욕구에 관한 결핍과 분리해 보자면 좀 더 까다로운 작업이라 많이 헷갈릴 때가 많았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소속감이 단단한 커뮤니티의 존재는 축복이란 사실이다. 물론 커뮤니티가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보다는 전체주의적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고독한 개인으로 사는 편이 100배 낫다. 그러나 부정적인 커뮤니티가 있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커뮤니티 또한 존재할 수 있다.


통제광이자 세상에 반항심을 지니고 의심이 많은 고독한 나는 여지까지 그깟 돈에나 관심이 있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수단으로 삼는 반쪽자리 헐거운 커뮤니티 따위에 속할 수 없다고 커뮤니티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살아왔으나사실은 누구보다도 커뮤니티를 필요로 하고 커뮤니티에 목마른 인간이다. 최상위층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만들기 어렵고 이상적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과 열망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게 근래 드러났다.



사람들은 평생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힘들게 커뮤니티를 만들어놓고 고작 돈이니 직업이니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수단으로 홀라당 그걸 써버리고, 그것조차도 기브앤테이크니 뭐니 하면서 조건을 붙이는 데다가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 커뮤니티는 와해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니 고작 그걸 하려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내 그릇은 그렇게 작지 않다. 내 야심은 그렇게 쪼잔하지 않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내는 커뮤니티에 동조할 수 없을 뿐이지 커뮤니티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때로는

그런 게 뭐가 필요해. 그런 사람이 어딨어. 나나 필요하지. 그딴 게 필요한 사람이 또 있나. 있어도 못 찾을 거야. 다른 사람들은 나 빼고 다 찾은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건 동화 속 세상에나 있다. 있다 쳐도 그걸 만드는 게 너일 리는 없다. 네가 만드는 게 잘 굴러 갈리 없다.



이런 두렵고 쫄보 같은 외침의 소리를 매번 스스로 듣게 되는 거다. 자체적 자발적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다행인 건 Just Dance를 추고 났더니 이런 찌질하고 연약한 마음의 소리를 터놓는 용기가 솟아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청난 걸 꿈꾼다. 나는 야심가다. 욕심쟁이다. 나는 나의 야심에 기꺼이 동참할 동지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차라리 돈으로 능력으로 수치로 줄 세우면 편할 정도의 세상의 논리 따위 통하지 않는 이상적인 저세상에나 있을 법한 엄청난 커뮤니티를 꿈꾼다.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또 곧 다가올 AI 세상에서 아니 어떤 세상이 와도 와해되지 않을 영원한 커뮤니티를 꿈꾼다. 나는 종교 같은 커뮤니티를 꿈꾼다. 그러나 절대 종교가 되지 않는, 누구도 이상화하지도 누구도 추켜세우지 않는 커뮤니티, 규칙이 없지만 모두의 야심이 같은 커뮤니티, 공동의 가치를 집요하게 추구하면서도 어느 누구보다 다양성 개인성을 존중하는 커뮤니티, 거기있으면 숨이 탁 트이고, 세상 내 편만 있어서 사는 게 행복해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커뮤니티, 일시적인 갈등은 있어도 시샘도 증오도 미움도 없는 커뮤니티,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손을 놓지 않는 커뮤니티, 사람이 사람에게 파라다이스를 선사하는 그런 다정하고 행복하고 성장하는 커뮤니티를 꿈꾼다.


세상을 구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나는 오로지 나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또 나를 알아보고 알아준 또 함께 하고 싶은 너 그러니까 우리의 행복만을 꿈꾼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구하지 않아도 구하게 될 거라는 거 안다. 내 인생이 그렇게 살아남았으니까 가족이 아니여도 계약 관계가 아니라도 이해관계가 없어도 우리가 영원히 서로를 구할 것이란 걸 안다. 이제 공정함에는 관심이 없다. 정의로울 필요도 세상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좋고 네가 좋으면 될 뿐이다.


문제는 그런 너를 어디서 찾느냐일뿐이다. 그러니 너를 찾을 때까지 비록 내 마음 소리가 그런 거 다 집어치워 속삭여서 시무룩해 울다가도 또 Just Dance를 하고 이런 글을 계속 써야지.


-2021년 2월 23일, by 고물

Sort:  

필력이 나날이 하늘을 뚫습니다.

엇 감사합니다 ! 나하님

고물님 전투력 전혀 약하지 않습니다.
전에 이야기 하셨던 대화방 혹시 뭐라고 검색하면 찾아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전투력 리셋이 자주 되서 그렇죠
아 이전에 말씀드린 곳은 클럽하우스 라는 SNS입니다! 공부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지만서도

클럽하우스!
공부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