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하느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어요

in #zzan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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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하느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어요

사무실에 쥐가 출몰했다.
비명이 터졌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근을 했던 직원 말에 의하면 전날 밤에도 기둥을 타고 내려와서 쓰레기통에서 맥심 커피믹스를 물고 올라갔다고 한다. 같이 있던 직원은 혼비백산 사무실을 탈출했고, 자신은 막대기를 들고 벽을 쳤다고 했다. 커피 믹스가 빈껍데기인 것에 열 받았는지 대낮 이십 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등장했다. 배고프면 뵈는 게 없는 입 가진 동물의 치명적 약점이다.
연락을 받은 시설 과장이 왔다. 그는 박카스 빈 병을 찾았다. 쥐구멍을 막는 데는 빈병만 한 게 없다면서 쥐가 나왔다는 벽의 틈에 집어넣고 쥐잡이 끈끈이를 책상 밑 여기저기에 펼쳐 놓았다. 그러다 사람 잡는 거 아니냐고 누가 말했지만 평소의 무표정 그대로 나가 버렸다.
오후에 위층 전무가 다소 짜증스런 표정으로 내려왔다.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쥐가 맞다고, 아래층이 막히니 위층에서 노나 보다고 누군가가 설명했다. 오십 년 된 건물 이제 재건축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구시렁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전무도 대꾸 없이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 직원들은 익숙한 듯 익숙지 않은 처절한 절규를 들어야만 했다. 파란색 네모난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통 옆과 낡은 철재 캐비닛 뒤쪽에서 생쥐가 각각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떼어 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드는 B4 사이즈 끈끈이 지옥에 갇혀버렸다.
나이 먹은 직원들은 늙은 내가 하리? 물러앉았고, 젊은 남자 직원들은 이럴 때만 남자 찾더라? 슬슬 피하는데, 어린 여자 직원이 애처롭게 발버둥 치는 이것들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의연한 그녀의 뒷모습에 가장 큰 박수를 친 사람은 특전사 출신임을 은근히 자랑하던 직원이었다.
줄기차게 책상 위를 달리던 쥐들(마우스)이 일제히 휴식을 취하는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오늘의 후식은 만년 곱창처럼 씹어도 씹어도 나올 게 있는 사장 험담, 또는 정신 나간 부동산 정책을 제치고 ‘쥐’가 차지했다.
입이 근질거렸던지 굵은 웨이브로 멋을 낸 이 대리가 국가고시 시험장에 나타났던 쥐 이야기를 꺼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뭔가 이상했어요. 제가 맨 끝자리였는데 감독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더라구요. 보니까 쥐가 사물함과 벽 사이에서 주둥이를 내밀고 있어요. 하하”
“그 중요한 시험장에 쥐가? 허, 방송 탈 뻔 했네요.”
“수험생들 놀랄까봐 쫒지도 못하고 한바탕 기 싸움을 했군요.”
“그래서 그 시험에 합격했어요?”
“합격했으면 제가 여기 있겠어요?”
남자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도시 쥐는 생긴 것도 시골 쥐와 달라요. 엄청 크잖아요.”
이번에는 중년의 여자 직원이 머그잔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알곡을 훔쳐가고, 밤에는 천장에서 운동회를 하는 얄미운 쥐들만 알고 살다가 도시의 하수구에 시커멓게 웅크리고 앉아 발을 굴러도 꿈쩍 않는 쥐에 놀라 자신이 도망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 쥐, 시골 쥐>라는 동화는 다시 쓰여야 한다고 학부모다운 발언을 했지만 실은 요즘 스마트폰과 게임에 빠진 자녀 때문에 보통 속을 끓이는 게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연장자인 김부장이 자신은 쥐 트라우마가 있다고 멧돼지도 때려잡게 생긴 풍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우리 시골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생강굴이 있었어.
거기다 생강, 고구마, 감자 보관하면 아주 싱싱햐. 봄이 되니 얘네들도 먹을 게 없었나 거길 기어 들어간 겨. 어떻게 들어가긴 했는디 나오질 못해, 생강굴이 거 꽤 깊거든.
국민학교 1학년 땐가, 아부지가 쥐 잡으라고 해서 줄사다리 놓고 굴에 내려가 봤더니 아, 글쎄, 쥐가 쥐를 잡아먹었더라고. 내가 잡을라 했더니 마지막 남은 젤 힘 쎈 눔이 내 발을 냅따 무는 겨. 얼마나 놀랬는지...... ”
듣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쥐는 이미 헐크까지는 아니더라도 늑대만큼 커져 있었다.
“그래도 쥐로 떼 돈 번 사람도 있네요. 예전엔 톰과 제리가 인기 있었죠. 스튜어트 리틀도 애들이랑 재밌게 봤는데.”
딸아이 어릴 적 헤어밴드의 미니 마우스와 실물 쥐 사이의 간극에 새삼 놀라며 다음 사내 공모전은 캐릭터를 이용한 이미지의 극대화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말을 끝으로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쥐라는 동물은 12지지의 첫 번째로 부지런함과 다산의 상징이었다. 곡식을 축낼지언정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뜻이다. 농경 사회에서 부지런함은 최고의 덕목이요, 다자녀는 노동력의 증가 곧 생산성 향상을 의미했다. 오죽하면 ‘물꼬 싸움은 아들 많은 사람이 이긴다’고 했을까.
한편 미키 마우스는 1938년, 톰과 제리는 1940년에 제작되었으니 쥐 캐릭터에 열광한 세월이 생각보다 오래 되었다. 그런가 하면 COVID-19 덕에 뜬금없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불려나온 까뮈의 『페스트』는 1947년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페스트균이나 콜레라균이 뭔지도 몰랐던 시대가 있었듯이 후손들은 미세플라스틱, 이산화탄소 배출의 위험을 알면서도 마구 사용했던 우리들의 미개함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에는 더 나쁜 쥐가 있으니 모두를 위한 파이를 갉아내고 바수어 독식하려는 인(人)쥐다. 김광림의 시에 변훈이 곡을 붙인 <쥐>라는 가곡을 들어보자.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 병폐를 마구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 백주에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 이리 많습니까
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 야단치는 소란이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어 /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간 /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깔을 한 / 쥐가 되어가겠지요
하나님 정말입니다
(김광림, ‘쥐’ 전문)

신생 기업을 털도 안 뽑고 날로 삼킨 기업쥐들,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저희들끼리 짖고 까불며 후퇴시킨 정치쥐들. 하청의 하청을 받아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 하다가 꽃 같은 목숨 내놓았건만 계산기만 두들기는 고용쥐들. 어린 쥐를 희롱하는 늙은 쥐, 순진한 쥐들을 꼬여내는 교주쥐......
여기에 형체도 없는 쥐 중의 쥐가 나타났으니 이 옷 한번 입어봐, 이거 맛있겠지? 말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찾아주는 저 빅터이터라는 쥐가 그것이다. 이 신개념의 쥐는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려 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수집된 정보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제품을 선택하면 좋을지 알려 준다. 어느 순간 우리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신이 된 쥐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될지도 모른다.
파란만장했던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저물고 있다. 잘 가라, 쥐들아. 순하고 참을성 많은 소가 이제 우리를 등에 태우고 한결같은 걸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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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추천이요~~~~ 정신없이 읽었네용 엄청 재밌습니당^^

부끄 부끄..... ㅎㅎ

정말 어쩌자고 그러셨어요 ㅋㅋ

그러게요. 쥐들아 물렀거라~

오늘 본 최고의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정말 만나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쥐를 무서워 하시는군요? ㅎㅎ

일단 대상작 성지순례왔습니다!!
왜 이 포스팅을 놓쳤었지??
역시 도잠형의 내공은!!! 크으으으

각자 스타일이 있어서 나름의 분위기가 다름.
오이형 글을 나는 좋아해. 간단하면서도 위트가 있어. ㅎㅎ